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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大漢門)>을 <대안문(大安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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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문(大漢門)>을 <대안문(大安門)>으로 고쳐야 합니다.

<대안문>이 <대한문>으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승정원일기≫와 ≪경운궁중건도감의궤≫, 그리고 ≪老石集 二≫에 나타나 있습니다.

⑴ 먼저 ≪승정원일기≫를 보겠습니다.

『●1. 고종 43년 병오(1906, 광무 10) 4월 2일(기해, 양력 4월 25일) 맑음 좌목
○ 중건도감의궤 당상(重建都監儀軌堂上) 리재극(李載克)이 삼가 아뢰기를,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할 길일(吉日)과 길시(吉時)를 일관(日官) 김동표(金東杓)에게 택하게 하였더니, 일을 시작할 날은 음력 4월 12일 정시(丁時)가, 상량(上樑)은 동월 24일 경시(庚時)가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날 이 시각에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받든 칙지에, “Ⓐ아뢴 대로 하라. 대한문(大漢門)으로 개명하라.” 하였다.

●2. 고종 43년 병오(1906, 광무 10) 4월 8일(을사, 양력 5월 1일) 맑음 좌목
○ 중건도감의궤 당상(重建都監儀軌堂上) 리재극(李載克)이 삼가 아뢰기를,
“대한문(大漢門)의 상량문 제술관ㆍ서사관, 현판 서사관의 실차(實差)와 예차(預差)에 대한 직역(職役)과 성명을 삼가 개록(開錄)하여 별단(別單)에 써서 들입니다.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는 칙지를 받들었다.

●3. 고종 43년 병오(1906, 광무 10) 4월 8일(을사, 양력 5월 1일)
중건도감 별단
○ 중건도감 별단은 다음과 같다.
대한문 상량문 제술관은 령돈녕사사(領敦寧司事) 리근명(李根命)이고, 예차는 궁내부 특진관 조병식(趙秉式)이며, 서사관은 종1품 윤용구(尹用求)이고, 예차는 중추원 찬의 조병필(趙秉弼)이며, 현판 서사관은 궁내부 특진관 남정철(南廷哲)이고, 예차는 궁내부 특진관 리우면(李愚冕)이다.』

보는 바와 같이 ●1에서 리재극 등이 <대한문>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임금에게 상주했더니 임금이 Ⓐ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는

“(경들이) 아뢴 대로 (수리는 그리)하라. (<대안문>은 경들이 <대한문>으로 개명하면 좋겠다고 아뢴 대로) <대한문>으로 개명하라”

라 한 것으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 )은 당시 나라의 앞뒤 정황으로 보아 <대한문>이라는 이름을 지은이는 임금이 아니라 대신들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임금이 <대한문>이라 지어 놓고 리재극 등에게 명했다면,

“아뢴 대로 하라. 대한문(大漢門)으로 개명함이 어떤가.”

라 했을 것입니다. 일부 대신들이 자의적으로 <대한문>을 생각해 낸 것인지, 아니면 일본을 받아들이자는 일부 대신이 이등박문의 사전 권고 또는 강요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도

“(경들이) 아뢴 대로 (수리는 그리)하라.”

라 한 것으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 )은 당시 나라의 앞뒤 정황으로 보아 <대한문>의 상량문 제술관ㆍ서사관, 현판 서사관의 실차와 예차는 임금이 아니라 리재극 등이 정하여 상주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이미 조선총독부가 1월에 남산에 설치되고, 3월에 초대통감 이등박문이 조선땅에 온지 2개월째 되는 해였습니다. 이등박문은 조선의 얼을 없애고자 궁궐의 신성함을 무너뜨리는 침략의지를 펼쳐 나가던 때입니다. 조정 대신들을 포섭 회유하려 들던 때입니다.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는데도 수리로만 끝내지 않고 <대한문 상량문>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현판을 <대한문>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때가 병오년(1906년) 4월이었습니다(≪老石集 二≫). <대안문>은 “나라와 백성이 크게 평안한 문”이라는 길상어입니다. 따라서 우국지사들은 길상어인 <대안문>을 버리고 <대한문>으로 바꾼 것은 이등박문이 조정한 일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안(安)->과 <-한(漢)->은 기(氣)의 유무(有無) 차만 있을 뿐, 명확하게 발음하거나 듣지 않으면 [대안문]과 [대한문]을 변별하기 어렵다.
ⓑ<안(安)>은 <평안>이지만, <한(漢)>은 <부랑배, 악한, 괴한>이라는 조롱어이면서 <강물>이라는 말이다.
ⓒ≪경운궁중건도감의궤≫에서 <한(漢)>을 <운한(雲漢), 소한(霄漢)>에서 비롯된 말이라 하니 이 <한(漢)>이 “하늘, 무지개, 은하수”로 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늘>은 “천(天, 祆, 천...), 건(乾, 漧...), 민(旼, 旻), 소(霄...), 호(昊), 궁(穹...), 운(雲)...”이고, <물>은 “한(漢), 수(水), 천(川), 빈(濱, 瀕, 浜), 담(潭), 소(沼)...”이다. <운한(雲漢)/소한(霄漢)>은 “은하수”이다. <무지개>는 “천궁(天弓), 채홍(彩虹), 제궁(帝弓), 홍예(虹霓, 虹蜺)...”이다.
ⓓ광해군이 지은 길상어를 버리고 ⓐⓑⓒ와 같은 것을 취한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승정원일기≫를 보아도 <대한문>을 임금이 지었다는 근거가 없다. 임금이 지었다면 그의 유고(遺稿)인 ≪주연선집≫에서 <대안문>처럼 언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문>이 없다.

와 같은 까닭 때문입니다.


⑵ 다음으로 ≪경운궁중건도감의궤≫의 <대한문 상량문>을 보겠습니다.

① <대안문(大安門)>은 불타지 않아 <상량문(上樑門)>이 필요 없는데도 ≪경운궁중건도감의궤≫에 <대한문 상량문>이 실려 있습니다.
② <대안문>을 새로 짓고 상량(上樑)을 하려고 <상량문>을 지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현판>만 바꾸었기에 <상량문>은 폐기해야 했습니다.
③ <대안문>의 현판만 <대한문>으로 바꾸었다면 <상량문(上樑門)>이 아니라 <환액문(換額文)>이라 해야 했습니다. <대한문>을 새로 짓지도 않았고 상량(上樑)도 하지 않았는데 상량문(上樑文)이 있는가 하면, 환액(換額)만 했는데도 <환액문(換額文)>이 없습니다. <상량문>은 <상량(上樑)을 할 때 천지신명에게 고유(告由)하는 글[文]>입니다. 환액(換額)만 했다면 <환액문>이 있어야 했습니다.
④ 그런데도 <환액문>이 아니라 <상량문>이라 했다면 <대안문(大安 門)>이라는 이름과 현판을 부정시한 것이 됩니다.
⑤ <대안(大安)>이란 <국이민대안(國而民大安=나라와 임금(백성)이 크게 평안함)>이라는 길상어라면, <대한(大漢)>은 <국이민대한(國而民大漢=나라와 임금(백성)이 큰부랑배(/큰물바다))>라는 불길어입니다. <한(漢)>은

▲ 비록 <나라>라는 뜻이 있을지라도, 여기서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내, 놈, 부랑배, 괴한, 악한...>과 같은 뜻을 지닌 말로 <대한>은 <큰부랑배/큰괴한/큰악한...>인데다,
▲ ≪경운궁중건도감의궤≫ <대한문 상량문>처럼 <은한(銀漢)/소한(霄漢)>의 한(漢)을 련상한 <물>이라 하더라도, <대한(大漢)>은 <큰물바다>입니다. 하늘물(은한/소한)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면 <한라산(漢拏山)←은한라인(銀漢拏引)>의 "백록담(白鹿潭)"처럼 조선이 온통 물바다로 되는 까닭입니다. <은한(銀漢)라인(拏引)산>에서 유래한 <한라(漢拏)산>은 “은하수[銀漢]를 땅 위로 붙잡아 끌어내린[拏引] 산”입니다. 그래서 산꼭대기에는 “물바다(=백록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백두산(白頭山)>은 은하수와 관련된 말이 없는데도 “물바다(=천지못)”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엄연히 다르지만, <백두산>은 은하수를 끌어들이거나 들먹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 ≪경운궁중건도감의궤≫에서 <운한/소한>이란 말을 끌어들여 상징적인 뜻으로 “대은하수로 들어가는 문”이라 했다 하더라도, “대은하수로 들어가는 문”의 안쪽인 궁(宮)과 궁(宮) 마당은 모두 “대은하수(=큰물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은하수”는 하늘에 있다고 믿는 큰강물입니다. 그 큰강물이 임금이 거처하는 궁(宮)에 머문다면 그 궁(宮)은 모두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조선궁궐=물바다'는 조선망국을 도모하는 불길어입니다.
▲ 목조건물인 궁궐이 화재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설령 물[水]과 관련된 부적을 대들보에 얹거나, 물과 관련된 말이나 기구를 리용했다 할지라도 국운이 기울어가는 19세기 말까지 궁궐 또는 궁궐 정문이름에다 <(큰)물[(大)漢]>을 직접 내건 경우는 없었습니다.

⑥ 글자 하나에도 신중했던 조선말기 선비들이 <상량>을 하지도 않았는데 <상량문>을 썼다는 것은 조선 선비의 관습 법도에 어긋나고 있습니다.
⑦ <대한문>이라는 이름을 지은이는 말의 힘이 무서움을 알고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바꾸어 국기(國基)와 국운(國運)을 돌려 버리려고 했습니다.
⑧ 야밤을 틈타 현판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바꾸었기에 떼어버린 현판(대안문)을 다음날 아침까지 수거하지 못했습니다.
⑨ 우국지사가 그러한 내막을 알고 버려진 현판(대안문)을 수습하여 비밀리에 보관하다 광복 후 <왕실유물박물관>에 내 놓은 것이었습니다.
⑩ 력사는 인과률에 의해 기술되는 삶의 가치입니다. 결과를 가지고서 그 원인을 찾아 따지는 것이 인과률입니다. ●3에서처럼 <대한문> 수리를 주도했던 리재극 등은 그 사이 조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나 결국에는 일본귀족으로 귀속되었습니다.
▼ 리재극(의궤 당상)----->남작
▼ 리근명(상량문 제술관)->자작
▼ 윤용구(서사관)-------->남작
▼ 남정철(현판 서사관)--->남작

⑶ 끝으로 ≪老石集 二≫를 보겠습니다.

○ 丙午:大安門之名博文換之曰大漢門
悲哀王四十三年丙午也陽四月日慶運宮之大安門受亂事起焉矣大安門之懸板以大漢門換之焉換之者倭虜博文也安字以漢字換之也漢之義有浮浪人是男子之賤稱也怪漢之漢是也博文欲奪朝鮮國之安故奪之其安字也大安門乃慶運宮之門也命名者龍蛇亂時 宣廟也由是博文益忌安字遂奪其安字也博文執政之衙乃南山統監府且悲哀王執政之宮闕乃慶運宮也向九年前丁酉悲哀王自昌德宮移御于衙館于自衙館遷還御于慶運宮是倣 宣廟古事而從之者也博文忌之者 宣廟古事之終始夜博文之蠻作其大漢者誰也悲哀王其比也博之行蠻何以成之乎傳曰慶運宮之修繕時乘夜換之也是譎計也役中博文竊取而換之焉行於夜間史氏曰安字之被奪也國之將來不安

이를 배달말로 뒤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병오:<대안문>의 이름은 박문이 바꾸어 <대한문>이라 했다.
비애왕(일명 ‘고종’) 43년이 병오이다. 양력 4월 어느 날 <경운궁>의 <대안문>이 수난을 당했다. <대안문>이라는 현판을 <대한문>으로 바꾼 것이다. 바꾼 사람이 왜로 박문이다. <안>자를 <한>자로 바꾼 것이다. <한>의 뜻에는 ‘부랑인’이 있다. 이는 남자의 얕잡아 이르는 것이다. ‘괴한’의 ‘한’이 이것이다. 박문이 조선국의 <안:평안>을 빼앗고자 했기에 그 <안>자를 뺏은 것이다. <대안문>이 <경운궁>의 문이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룡사란(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이다. 이로 말미암아 박문이 <안>자를 더욱 싫어하여 마침내 그 <안>자를 뺏은 것이다. 박문이 집정한 관아가 남산통감부이고, 비애왕이 집정한 궁궐이 <경운궁>이다. 9년 전 정유에 비애왕이 창덕궁에서 아관으로 리어하였고 아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온 선조임금 고사를 본받아 따른 것이다. 박문이 싫어한 것이 선조임금 고사의 일이다. 박문의 야만이 만든 그 <대한>은 누구인가. 비애왕을 비유한 것이다. 박문의 만행이 어찌 이루어진 것인가. 전하기를, “<경운궁>을 수선할 때 밤을 틈타 바꾼 것이다. 이것은 속임수이다. 작업 중에 박문이 훔쳐서 바꾼 것이다. 야간에 행해진 것이다.”라 했다. 사씨가 이르기를, “<안>자가 빼앗겼으니 나라의 장래가 불안하도다.“라 했다.

보는 바와 같이 여기서는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바꾼 실질적인 인물을 이등박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의 Ⓐ에서 본 바처럼 임금이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발의 개명한 것이 아니라 리재극 등을 비롯한 일부 대신들이 주청한 것이며, 이를 뒤에서 조정한 사람이 이등박문이라고 본 까닭입니다. 인과률에 따라 결과인 ⑩으로써 Ⓐ에 담겨진 원인을 류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문>을 <대안문>으로 고쳐야 합니다. "명성황후 장례절차가 그려진 의궤”는 일본이 가져갔다가 이번에 반환했습니다. 그런데 ≪경운궁중건도감의궤≫는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경운궁중건도감의궤≫는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정식으로 간행된 것이 아닌데다, 조선이 주체적으로 행해 온 전통문화력사가 아니라서 큰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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