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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

  • 정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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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9

 

단재 신채호 선생

영토를 잃은 민족은 일어설 수 있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하면 다들  떠오르는 문구가 있을 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딱 이 문구만 떠올릴 뿐 단재 선생님의 일생과 사상은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개화기 조선의 3대 천제이자 근대 민족사학의 기틀을 마련한 사학가,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일제와 싸운 지식인이자 혁명가인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애

어린 시절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1880년 충청남도 대덕군 정산면 익동 도리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8살 때 부친을 여의고  지금의 충청도 청주 조부 댁으로 오게 됩니다. 조부 밑에서 한학을 배우게 되고 14세 때 사서삼경을 모두 마치고 각종 역사책을 섭렵하게 되고 이후 서울에서 조선의 3대 천제로 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한 벽초(碧初) 홍명희, 대한민국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낸 위당(爲堂) 정인보, 단재(丹齋) 신채호 치기도 했는데  이들 중에서 단재 선생을 최고로 손꼽을 만큼 명성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18세 때는 당시의 재상 양원(陽園) 신기선의 집을 드나들며 많은 책을 보게 되는데 한학을 비롯해 국내에 발간 번역된 신학문의 서적들을 모두 섭렵하면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국내외의 정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 19세 때 신기선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고 신구학문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소하 시켜 나가고 이미 상당한 수준의 유학의 경지에 오른 단재는 26세 젊은 나이로 성균관 박사가 됩니다.


의열단 행동강령 조선혁선언
유학자에서 개혁사상가, 독립운동가로
단재 선생은 성균관 생활중 독립협회에 가담하게 되면서 기존의 유학자가 아닌  개혁사상가로 자기혁신과 방향 전향을 하게 됩니다. 단재가 개혁사상가의 삶의 변화로 가져온 것은 성균관에서 3년간 강의를 담당한 의병활동 지도자 이남규, 김윤성 애국계몽사상가 유인식 등의 가름침, 독립협회 활동으로 수구세력의 외국 의존 정책을 반대하는 개화사상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개혁사강가로서의 여론을 주도하게 됩니다. 26세 이후에는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초빙돼서 언관, 사관 다운 시론과 사론으로 국혼진작, 애국계몽운동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이후 비밀 결사조직 신민회에 참가하여 취지문을 기초하고 국책보상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됩니다. 1910년 경술국치를 예감하고 4개월 전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괴 만주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고 중국 내의 역사서적을 탐독하며 우리 역사의 복원에 힘을 쏟았습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하였고, 1922년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의 행동강령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하고 작성하면서 간접적으로 무장투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48세가 되는 1928년 일제에 체포되어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에 투옥 죄수번호 411번을 받게 되고 57세인 1936년  일제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시게 됩니다.



1911년 미국에서 발행된 '독사신론'의 한글판.

한민족 역사의 복원을 독립운동 중심에 놓다
단재 선생은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의 애국심을 개발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기상을 일으키는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그이 생각은 독사신론에서 찾을 수 있는데  서문에서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지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지니, 아아,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겁지 않을 수 있는가." 역사를 통해 민족을 일께 우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분은 단재 신채호 선생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편찬한 행촌 이암 선생께서도 단군세기 서문에도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나라의 혼이자 정신입니다. 정신이 바로 서야 몸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나라의 정신인 역사가 바로 서야 국민들의 기상이 바로 서고 이를 통해 나라가 바로 설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단재 선생은 한민족의 올바른 역사의 복원을 통해  국민정신을 드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 즉 독립의 정신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단재의 역사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단재 선생은 1924년 조선사총론을 집필하며 "역사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자신의 사론을 팔 표하였습니다. 역사를 정신과 의식의 투쟁사로 보는 것인데요 인류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역사를 이루는 주체와 객체가 시간부터 발생하여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이 정신과 의식의 투쟁사입니다. 단재 선생의 역사관은 뚜렷한 자아 주체론입니다.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하고 조선민족을 아의 단위로 삼아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의 소장 성세를 서술하는 것입니다.

독사신론[讀史新論]과 조선상고사

독사신론- 대한매일신보에 기재된 단재 신채호의 사설
단재 선생께서 잘못 쓰인 역사 교과서를 세로 짓는 마음으로 쓴 것이 독사신론입니다. 이 독사신론이 나오면서 한국의 근대 민족주의 사학은 신채호의 독사신론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정도로 사학계뿐만 아니라 문화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론에서 단재는 역사민족주의 관점에서 근대 민족주의 사관을 수립하고 기존의 사학관과 사서들을 비판했습니다. 기존의 중국을 높이는 중화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신공황후의 신라침공, 임라일본부설등 일본역사서의 한국사 왜곡을 비판하였습니다.

조선상고사는 단재 선생이 1931년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하기 시작해 총 103회 연재되었고 당시 독자들로부터 절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1948년 종로서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우리나라 상고시대를 서술한 역사서입니다.  단군조선이 삼조선 체제로 세분의 왕이 나누어 다스렸다는 것과 세도읍지의 위치와 강역을 밝혀주고 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전성기와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민족정신 낭가 회복을 주창하다.

9천년 낭가제도 계승맥

단재 선생은 민족정신인 낭가사상의 회복을 주창하였습니다. 낭가사상은 단재사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단재 선생은 낭가사상의 원류를 한민족의 원래 종교인 수두제(蘇塗祭), 소도제 신앙에서 유래한다고 보았습니다. 단군조선이 개창과 더불어 민족적 구심점인 수두제전을 거행하였고 이것은 이후 부여, 고구려, 동예, 삼한의 제천행사로 계승되었고 고구려 태조왕, 차대왕때 손배제도로 국가적 차원의 정치제도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낭가사상은 한민족 9천 년 역사를 지속할수 있게한 역사의 혼 신교를 말하는데 이러한 신교정신을 실천하고 신교를 바탕으로 새문명을 열고 나라를 개창한 집단이 낭가입니다.  신라시대 화랑도 낭가집단입니다.  한민족의 혼 낭가제도는 환국 말기 환웅천황이 동방에 새 문명을 개창할 떼 데리고 온 문명개척단 3000명인 제세핵랑으로 부터 비롯되어 위의 그림과 같이 한민족의 역사와 같이하였습니다. 이들은 평상시 삼신상제님의 진리를 공부하며 완벽한 인격체의 길을 추구하고 학문과 무예를 동시에 연마하며 심신을 수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사시 구국의 선봉에서 국난을 물리쳤습니다. 결론적으로 낭가는 신교의 구도자이며 역사개척의 선봉장으로서 한시대의 구국청년단이 었습니다. 그리하여 항일구국운동, 광복군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어떤 외세의 침략에도 꺽이지 않고 다시일어서는 한민족 불굴의 정신력의 근원이자 새역사 개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단재 선생의 낭가사상이 구체화된 것이 그의 고대사 인식이고 고대사 서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재선생이 우리 한민족에게 남긴 말씀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우리 한민족은 위의 말씀처럼 우리의 특색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문화나 사상이 들어오면 한민족의 문화, 사상이 되어야 하지만 외국의 문화나 사상이 우리 한민족을 삼켜 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잃어버린 낭가정신의 회복하여 새로운 역사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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