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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석 작가의 『이게 진짜 여행』 - 서울 뚝섬에 있던 치우깃발, 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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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다른 이름 : 신도, 울루, 이매, 망량이
서울 뚝섬에 가면 치우천황에 대한 중요한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은 서울의 숲으로 변한 뚝섬은 원래 둑도로 불렸으며 둑을 독으로 읽기도 해서 독도라고도 했습니다.
오래 전 둑도엔 치우천황을 모시던 사당이 있었는데 치우의 깃발을 뜻하는 붉은색 둑(纛)기가 세워져 있어서 둑섬이라 했습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둑섬에 있었던 치우사당에는 중국의 황제헌원과 싸웠던 탁록(중국 북경에서 만리장성 너머 북쪽) 전투도가 거대하게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년 열리는 국가제례인 둑제(치우제) 때와 국가에 큰 환란이 있을 때 치우사당에서 정체불명의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이것을 치우의 깃발 또는 치우기(旗)라 했습니다. 붉은 연기의 모습을 소털로 붉게 물들여서 만든 기를 둑기라 했습니다.
정조 대왕 화성 행차 후 한양으로 돌아오는 병풍 그림 속 붉은 둑기, 사진=오동석 작가 |
둑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조선 정조대왕의 화성행차 후 한양으로 돌아오는 그림병풍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행렬도에서 가마 뒤쪽에 쌍룡이 그려진 깃발과 둑기가 행진하는 장면입니다.
화성 행궁에서 중요 행사를 그린 그림에도 쌍룡 깃발과 둑기가 보입니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처소 앞에 9개의 둑기를 세웠다고 하며, 현재는 몽골 정부청사 앞에 9개의 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전쟁의 신 치우천황에게 둑제를 세 차례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지역인사들과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서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에게 왜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 달라고 기원했습니다.
보통 제례라고 하면 엄숙하고 정적인 의식을 떠올리지만, 둑제는 다릅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데 도끼와 방패, 창과 칼, 화살을 휘두르면서 마치 군대가 진을 짜서 전투를 벌이듯이 춤을 추며 진행합니다.
둑제는 작은 제사로 위패도 없으며 단지 창끝에 붉은 털로 풍성하게 만든 둑기를 세우고 제사를 올리는 매우 특이한 행사입니다. 지금은 임진왜란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서 여수시에서 매년 봄 거북선 축제 때 ‘전라좌수영둑제’라는 행사를 합니다.
치우천황은 중국에서도 매우 추앙받았습니다. 진시황제도 동쪽으로 갔다가 지금의 산동성 태산에서 치우천황에게 제를 올렸으며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치우천황에게 극진히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도깨비 이름 중에선 신도, 울루, 이매, 망량이 전해져 옵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궁전의 문설주에 신도, 울루를 써서 붙였다고 합니다. 현재도 퇴계 이황 선생의 고택에선 입춘이 되면 대문에 입춘대길이라는 문구 대신 신도(神荼), 울루(欝壘)라는 도깨비 이름을 붙여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합니다.
이미 신라 시대 때 도깨비 모양의 문고리를 대문에 달아 왔습니다. 최근에는 용머리 모양의 도깨비 문고리를 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풍습은 저 멀리 유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중국에선 상나라와 주나라 시대의 청동화로에 도깨비 문양을 상징하는 도철문이 멋지게 세공이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화로에도 도깨비 문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이 도깨비는 전쟁의 신이면서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으로 상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사찰에서는 용의 얼굴처럼 한 도깨비 문양을 많이 만나는데, 특히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 안 밖에서 많이 보입니다.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세종 대왕 때 편찬한 붓다에 대한 일대기와 설법을 담은 책 <석보상절>에 나옵니다. 도깨비에게 청하여 복을 빌어 목숨을 길게 하고자 하다가 마침내 얻지 못하니 어리석어 정신이 없어 요사스러운 것을 믿음으로 곧 횡사하여 지옥에 들어가 나올 수 없으니 이를 첫 횡사라고 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도깨비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던 내용임을 알게 하는데 도깨비에게 복을 빌어 목숨을 길게 한다는 의미를 다른 말로 한다면 대웅전에서 도깨비인 망량신에게 개고기를 올려서 제를 지내면서 해탈을 얻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이야기이다.
도가에서 도통을 해서 장생술을 터득하고 오래 산다는 의미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당나라 때는 연단술에 심취했던 고관대작들이 많았는데 불로장생을 위한 도가의 연단에 사용하기 위해서 도깨비 모양을 하고 있는 청동화로나 쇠화로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고려시대 도깨비 화로와 거의 흡사합니다.
고려시대 청동 화로 - 도교에서 연단을 위한 화로로 추정, 사진=오동석 작가 |
다시 정리하면 도깨비의 가장 강력한 상징은 전쟁의 신, 벽사의 상징, 도통을 내려주는 신 등으로도 여겨 왔음을 알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도깨비가 유라시아 대륙 끝 유럽에서도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발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도나,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 있는 사원에 가면 도깨비 형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 지역의 힌두 사원이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인도 라자스탄에 있는 자이나교 사원 벽면에도 많이 보입니다.
그 형태는 입에 뱀을 물고 있는 형상, 입에서 어떤 기운이 쏟아져 나오는 형상, 해탈했음을 의미하는 소를 탄 구도자의 윗부분 또는 아랫부분에 도깨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가 아닌 코끼리 위에 득도한 구도자가 등장하기도 합니다.